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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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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서점의 오월 - 80년 광주, 항쟁의 기억

한겨레출판

김상윤.정현애.김상집 지음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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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5·18민중항쟁의 산실, ‘녹두서점’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80년 5월을 마주한 서점 가족의 이야기


5·18항쟁을 언급할 때 항쟁 최후의 거점이었던 전남도청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바로 녹두서점이다. 이 서점이 문을 연 기간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불과 4년 남짓. 하지만 15평의 조그마한 책방은 5·18항쟁 당시 광주의 고립된 시민들을 위해 수많은 대자보와 전단을 만들며 정보를 전달해준 상황실이자,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간이식당이었으며, 윤상원을 비롯한 지도부가 항쟁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간 회의실이었다. 이 책은 서점 가족의 눈으로 본 80년 오월에 대한 증언이자 살아남은 자들이 이어간 또 다른 항쟁에 대한 기록이다.


“80년 오월의 거리, 그곳에 서점이 있었다”
5·18민중항쟁의 산실, 녹두서점


광주에 가면, 약 30여 곳의 5·18사적지가 있다. 10일 동안 이어진 항쟁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들이다. 그중에서도 항쟁 최후의 거점이었던 전남도청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있다. 바로 녹두서점이다. 이 서점은 헌책방으로 시작하여 1981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하기까지 불과 4년 남짓 운영됐다. 하지만 15평의 조그마한 책방은 5·18항쟁 시기 광주의 고립된 시민들에게 수많은 대자보와 전단을 만들며 정보를 전달해준 상황실이자,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간이식당이었고, 윤상원을 비롯한 지도부가 항쟁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간 회의실이었다.
이 책은 당시 녹두서점을 운영한 서점 가족 눈으로 본 1980년 오월의 이야기다.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녹두서점은 광주 유일의 인문사회과학서점으로 당시 비판적 사상에 목말라했던 시민과 학생들,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길 원했던 야학 노동자들, 반독재를 외치던 대학과 시민사회의 활동가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이야기하고 지적 무기를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다. 서점은 당시 금서로 지정된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제공하며 대학가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지적 수원지 역할을 했다. 유신정권 반대를 외치다 전남대에서 제적당한 뒤 녹두서점을 차린 김상윤, 남편을 도와 서점 살림을 도맡은 중학교 교사 정현애, 그리고 80년 5월, 33개월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상윤의 남동생 김상집이 1980년 오월 광주를 이곳에 불러낸다.


세 가족의 시선으로 보는 5·18항쟁의 전 과정
감옥, 서점, 거리에서 마주한 10일간의 처절한 사투


이 책은 녹두서점의 세 가족이 각각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경험한 5·18항쟁의 이야기다.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민주화의 봄을 쿠데타로 짓밟으려는 전두환 신군부에게 녹두서점은 광주 진압을 위해 미리 손을 써두어야 하는 곳 중 하나였다. 5월 17일 자정이 다된 시간, 총을 들고 서점에 갑작스레 들이닥친 대공과 형사들에 의해 서점주인 김상윤은 505보안부대 지하실로 끌려간다. 컴컴한 지하실 복도, 고문당하는 사람들의 비명이 낭자한 곳에서 그의 5·18은 시작된다.
남편이 지프차에 실려 어두운 밤거리로 사라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홀로 서점에 남게 된 정현애는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처럼 갑작스레 남편이 구속된 부인들, 녹두서점을 방문한 수많은 학생과 시민, 광주 내 민주인사들에게 남편의 검거 소식과 당시 상황을 공유하고 시간대별로 상황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5월 18일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녹두서점은 정현애를 중심으로 어느새 광주 전역에서 벌어지는 전투와 학살 소식은 물론 전국 정보가 모이는 상황실로 변모하게 된다.
군 제대 후 매일 밤 야학 노동자, 청년들과 함께 시국토론을 벌이던 김상집은 17일 새벽, 들불야학 강학인 윤상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잠에서 깬다. 윤상원과 함께 녹두서점에 달려간 그는 서점에 모인 청년 학생들과 거리로 나선다. 그곳에서 불과 보름 전 자신이 속해 있던 부대가 운용하는 500MD 헬리콥터가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시민들을 위협하고, 눈앞에서는 계엄군이 착검한 총으로 시민들을 무차별 살육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녹두서점의 세 가족은 감옥(김상윤), 서점(정현애), 거리(김상집)라는 각기 다른 공간에서 자신들이 겪은 5·18항쟁 열흘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항쟁의 전 과정과 에피소드, 그 속에 담긴 항쟁지도부와 기층민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나간다.


평범한 시민은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넘어 항쟁의 주역이 되었나
일상의 고귀함을 지키려던 사람들의 목소리


이 책은 평범했던 시민들이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항쟁에 나서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전두환 쿠데타 세력의 기습적인 검거작전에 의해 항쟁을 지도할 인사들이 대부분 검거되거나 도피한 상황이었다. 녹두서점에 모인 사람들이 가까스로 지도부 역할을 대신하고는 있었지만,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 시내로 대거 투입되고 시민에게 집단발포 했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이들도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피신을 결정한다. 그런데 정현애와 김상집이 피신하는 도중 목격한 것은 투쟁을 외치며 도청 쪽으로 향하는 총을 든 시민군들이었다. 운동권들의 예상을 뒤엎고 시민들이 흩어지지 않고 저항을 결의한 것이다. 책 곳곳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생필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매점매석이 혼란을 가중시킬 것을 경계하며 판매량을 조절하는 상인들, 부패하는 시신의 악취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죽은 자들을 돌보는 사람들, 최루탄으로 고통받는 시위대를 위해 대야에 물을 길어오는 유흥업소 여성들, 학생들을 향한 계엄군의 무차별적 폭력에 참지 못하고 항의하는 노인들, 계엄군의 구타에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었는데도 시민들이 얼마나 잘 싸우는지 자랑스럽게 떠들던 열네 살 구두 수선공 등 항쟁 속 시민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한다.
이 책에는 세 사람이 항쟁의 여러 변곡점마다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자신들을 진압하기 위해 뻣뻣이 서 있는 전경 사이로 자신의 옛 친구를 발견한 순간의 씁쓸함, 바로 옆 사람이 계엄군의 총검에 찔려 쓰러질 때 느꼈던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공포, 죽은 자의 관 옆에서도 조잘거리던 생기 넘치는 어린 학생들을 향한 연민과 걱정,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느꼈던 따스함. 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항쟁에 뛰어든 사람들이 철두철미한 ‘전사’가 아니라 ‘빨갱이, 폭도, 극렬분자’라는 낙인과 무차별 폭력에 맞서 그저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려 한 존재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책은 5·18항쟁을 잔혹한 계엄군의 진압장면과 박제화된 사건 기록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월의 거리에 서 있던 시민들이 자신이 마주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고,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왜 그렇게 느꼈는지 서술하며 일상의 고귀함을 지키려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부활시킨다.


“우리의 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이 이어간 또 다른 항쟁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을 지키던 마지막 시민군이 계엄군의 총탄에 최후 진압당하고 10일간의 항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에게 항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이미 감옥에 있던 김상윤을 포함해 정현애와 김상집은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어 상무대로 끌려온다. 전두환 신군부는 5·18항쟁을 내란 사건으로 조작하기 위해 이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가하며 거짓 진술을 요구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빨갱이와 폭도로 낙인찍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 고문으로 정신이상에 시달리는 동료들과 항쟁 과정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 끝나지 않는 구타와 비인간적 대우로 인한 수치심과 싸우고 있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구속자 가족의 노력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항쟁이 내란 사건으로 조작되는 와중에 내란주동자 혐의에서 벗어난 정현애는 풀려난 뒤 곧바로 녹두서점으로 돌아와 나머지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석방운동을 진행한다. “조작된 내란죄 누명을 벗겨내는 일이 광주의 억울함을 풀어내는 일”(274쪽)임을 자각한 구속자 가족들은 전두환 정권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도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항쟁은 내란이 아님을 증언해줄 것을 요청한다.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 광주 학살을 방조한 미국의 책임을 따지기도 하고, 삼엄한 경비를 뚫고 명동성당에 들어가 단식농성을 진행하며 당시 침묵과 왜곡으로 일관하던 언론을 우회해 세상에 내란 조작을 폭로하고자 했다. 의기양양하게 광주를 방문한 전두환이 탄 차 위에 엎드린 채 경호원들이 눈앞에서 권총을 들이미는 와중에도 구속자들을 살려내라고 외치기도 했다. 5·18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이어간 또 다른 항쟁의 이야기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생생히 담겨 있다.
매년 5월이 오면 광주 시민들은 지독한 ‘5월 앓이’를 한다. 광주트라우마센터가 2017년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약 72퍼센트가 ‘5월이 되면 무언가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토로했다. 39년 전 겪은 분노, 고립, 낙인, 폭력은 여전히 살아남은 자들을 괴롭힌다. 이 책을 쓴 저자들 또한 5월이 되면 당시 겪은 고문 후유증으로 온몸에 발진이 돋고, 죽은 자들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제는 국가공식기념일이 된 5.18기념식에도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항쟁 최후의 날, 그 애절한 방송을 듣고서도 그들을 지키기 위해 뛰쳐나가지 못했던 많은 광주시민은 여전히 마음에 큰 병을 진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들이 39년간의 침묵을 깨고 이 책을 집필한 이유다.

“우리 가족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2012년부터 마음에 담아 둔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5·18항쟁에 대한 폄훼가 도를 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 상황이 두 가지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들을 현재까지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박정희 군부독재부터 이어져 온 지역 모순과 차별을 끈질기게 부추기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이 기록을 쓰게 만들었다.”(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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